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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78

터키 여행 후 인천 공항에서 멀리 마중나온 남편의 얼굴이 보이자 현실로 돌아왔다는 걸 실감하면서 이 여행은 드디어 끝이 났습니다. 떠날 때와는 달리 반가운 마음이 드는 것도 여행의 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대할 때는 그날이 그날이라 귀한 줄도 반가운 줄도 모르고 지나는 얼굴인데, 이렇게 며칠 만에 보니 새로운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동시에 떠날 때 미처 처리하지 못한 문제들과 다시 대면해야 한다는 게 부담이 되지만 떠날 때 보다 해결할 수 있는 자신감이랄까 기운이 생겨 마음이 덜 무거운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여행은 여행하는 동안 본인들이 속해 있던 공간에서 생기는 모든 현실적인 문제에 어쩔 수 없이 관여하지 못함으로써 잠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기회를 주기 때문에 기분전환이 된다고 .. 2010. 11. 24.
터키를 떠나며 이스탄불 공항까지 가면서 그 동안의 터키 여행 일정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우선 이번 여행은 출발서부터 비행기 때문에 문제가 있었고, 아이발륵에서의 달콤한 휴식을 빼고는 빡빡한 일정은 아침부터 밤까지 여유를 찾기 힘들었습니다. 누누히 말씀드렸지만 터키 유적지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버스로 이동하는 시간이 관광시간 보다 길어서 그 시간 동안에 잠을 보충하기도 하고 창 밖을 내다보며 여유를 찾기도 했으나 나이드신 분들은 많이 피곤하셨을 겁니다. 또 다른 아쉬움은 애초에 계획했던 대로 그리스를 포함한 여행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어디에도 그리스 단독 프로그램은 찾을 수가 없으니 천상 그리스는 자유여행으로 가야할 것 같습니다. 아니면, 그리스섬을 도는 크루즈를 이용하면 더 좋겠지만 비용이 문제가 되겠지요. 언제가.. 2010. 11. 20.
히포드럼 광장에 대해 블루모스크를 나오자 이미 주변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여 히포드럼에서 아주 잠깐 설명을 듣고, 급히 증명사진 몇 장 박고 바로 버스에 올라 저녁식사 장소로 옮김으로써 차낙칼레에서 출발한 오늘의 일정은 드디어 끝이 났습니다. 여기 관련된 사진들은 머문 시간도 짧았지만 앞서 말씀드렸듯이 사진기의 밧데리가 없어 제가 찍은 것이 아닙니다. 히포드럼은 본래 196년 로마의 황제 세비루스에 의해 지어진 검투 경기장이었는데, 4세기 무렵 비잔틴 제국 때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검투 경기는 금지되고 대신 말이 끄는 마차 경기장으로 바뀌었습니다. 10만 명 정도 수용이 가능했다고 하는 이곳은 경마장으로 이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왕위 계승을 놓고 벌어진 수많은 전쟁의 무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13세기 초 십자군의 침입으로 이 광장에.. 2010. 11. 20.
그랜드 바자르에서 그랜드 바자르, 터키어로 ‘카팔리 차르시’(covered market)는 지붕이 있는 시장이라는 뜻으로 500년 역사의 중근동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합니다. 현재 그랜드 바자르가 있는 장소는 비잔틴 시대부터 무역의 중심지였습니다. 이후 터키가 이스탄불을 장악하게 되면서 1455-1461년에 걸쳐 그곳에는 도시의 경제생활을 부강하게 만들 목적으로 두 개의 주 아케이드가 만들어졌습니다. 이후 사람들은 활발한 상업활동을 위한 더 넓은 장소가 필요했고 그 결과 주 아케이드의 바깥 부분까지 그 영역을 확대시켜 나갔습니다. 그 동안 지진, 화재 등으로 여러 차례 소실되었던 이곳은 몇 번에 걸친 복구 끝에 오늘날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18개의 출입구와 4천 개 이상의 상점들이 들어서 있는 이스탄불의 그랜드 .. 2010. 11. 17.
터키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오늘은 오전에 그랜드 바자르를 보고 오후에 서울가는 비행기를 타는 터키 관광의 마지막 날입니다. 한 군데서 이틀 이상을 머문 적이 없기 때문에 가방을 풀고 싸는 데는 이골이 났지만 어쨌든 이제는 그랜드 바자르를 들린 후 바로 공항으로 갈 예정이라 가방을 단단히 챙겼습니다. 이스탄불은 아무래도 호텔비가 비싸서 그런지 어제도 엘리베이터도 없는 작은 호텔에서 무거운 가방을 계단으로 옮기느라 너무 힘들었습니다. 다행히 방 크기는 그리 작지 않았지만 더운 물이 나오질 않아 한참을 기다린 끝에 수리공이 손을 본 후에야 겨우 쓸 수 있었습니다. 아침식사 때는 아무리 한국 관광객이 많이 묵는 곳이라지만 가는 곳마다 컵라면 냄새가 진동을 하여 빵과 채소, 약간의 과일, 그리고 커피나 차로 간단하게 아침을 먹는 이곳 사람.. 2010. 11. 12.
블루모스크에서 보스포러스 해협을 둘러본 후, 유람선에서 내리자 어느 새 저녁 시간이 가까와졌습니다. 길에는 차량이 늘어나 버스는 가다 서다를 반복함에도 불구하고 가이드는 우리를 블루모스크와 히포드럼 광장으로 안내를 했습니다. 원래는 도착 첫 날 봤어야 했는데, 순서는 바뀌었을 망정 빼놓지 않고 일정대로 관광을 했다고 해야 불평을 듣지 않을테니까 수박 겉핥기 식으로라도 거쳐가야만 했습니다. 요새는 인터넷이 발달하여 어느 여행사의 어느 가이드가 성의없이 했다든지 일정을 축소했다는 댓글만 올려도 그 여파가 굉장히 크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거지요. 그런데 보스포러스 해협에서 너무 사진을 많이 찍은 탓인지 여분의 밧데리까지 다 써서 그 중요한 블루모스크에서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습니다. 난감했지만 그렇다고 안 찍을 수는 없잖아.. 2010. 11. 3.
보스포러스 대교를 지나 유람선에서 물살을 헤치며 돌마바흐체 궁전을 지나 주변을 돌아보는 중 큰 다리 밑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바로 보스포러스 대교인데 그 옆에는 전통적인 이슬람 양식의 예쁜 오르타콰이 자미(사원)도 있었습니다. 보스포러스 해협에는 두 개의 다리가 있는데 솔직히 똑같이 생긴 현수교여서 어느 게 어느 것인지는 분간할 수 없었습니다. 대교를 지나서는 부자들의 별장으로 보이는 비슷비슷한 집들이 울창한 나무 사이로 다닥 다닥 붙어있었습니다. 해협을 바라보는 경관이 뛰어나 가격도 만만치 않겠지만 배에서 바라보는 모습도 좋아 보였습니다. 보스포러스 대교는 아름다운 보스포러스 해협을 가로 지르는 두 개의 다리 중 하나이며, 오스만제국을 터키공화국으로 선포한 후 50주년이 되는 1973년 10월 29일 영국에 의해 완공되었습니.. 2010. 10. 26.
보스포러스 해협을 가르며 우리는 배에 올라 물살을 가르며 일으키는 하얀 소용돌이를 흥분된 마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지난 번 톱카프 궁전을 관람했을 때 보스포러스 해협을 잠시 구경한 적이 있습니다만 이렇게 그곳을 직접 항해한다는 것이 너무 설레었습니다. 약 1시간 가량 걸리는 배에서의 유람은 버스를 타고 가는 관광과는 또다른 매력이 있었습니다. 일단 배에서 바라보는 육지의 풍경은 육지에서 바라보는 풍경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눈높이가 달라선지 주변이 물이어선지 더구나 주변의 고급 주택이나 궁전, 모스크 등이 스쳐 지나갈 때면 그 감흥은 배가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돌마바흐체 궁전은 그 빼어난 하얀색 외관의 아름다움으로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들어가 보지는 못하고 그저 감탄하며 배가 이끄는 대로 사진만 여러.. 2010. 10. 21.
보스포러스 해협을 가다 오랜 시간 끝에 마침내 이스탄불에 도착하였습니다. 우리는 도착하자 마자 보스포러스 해협을 둘러보는 크루즈를 타러 선착장으로 갔습니다. 선착장 앞 잔디에는 휴일이라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 주위에는 하나같이 음료수 병이나 신문지, 휴지 조각이 널려있어 얼마 전 우리의 모습을 보는 듯 했습니다. 설마 현재의 우리 모습은 아니겠지요? 모두가 환경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모습였습니다. 그런 것을 보며 아직도 선진국으로 가려면 좀더 시간이 필요하겠구나 하는 걸 느꼈습니다. 동시에 우리도 이런 모습을 외국인들에게 보여서는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스탄불은 유럽과 아시아가 공존하는 유일한 도시로 2,000년 이상을 동서양 문화와 상업의 교류지.. 2010. 10. 19.
이스탄불 가는 길 우리는 버스에 올라 또다시 창 밖을 내다보며 마르마라해를 따라 이스탄불로 가는 도로를 쉼없이 달렸습니다. 이젠 동네에 자리잡은 이슬람 교회의 첨탑도 그리 낯설지 않았습니다. 처음 터키에 도착하여 이스탄불을 떠나 앙카라를 향할 때만 해도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곳에 대한 호기심과 희망이 가득했는데 어느새 이스탄불로 되돌아가는 이 시간은 이 여행의 종반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이스탄불에서는 지난 번 비행기 사정으로 인해 시간 관계상 미처 보지 못한 관광을 마저 하고 하루를 묵고 서울가는 비행기를 타는 일정입니다. 차낙칼레에서 이스탄불까지는 약 5시간이 걸리는 코스라 그 동안 서울을 떠나서부터 지금까지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며 일정표를 보고 다시 한 번 꼼꼼히 정리를 하였습니다. 특히 저의 경우에는 여행 .. 2010. 10. 15.
이스탄불로 가는 부두에서 부둣가 식당에서 터키식으로 점심을 먹고 밖으로 나오니 길 건너에 너무 예쁜 항구 풍경이 펼쳐져 우리는 정신없이 달려가 사진을 찍었습니다. 같이 간 선배 하나는 사진기의 밧데리가 다 되어 그 근처 기념품점에서 서울보다 두배 이상 비싼 돈을 주고 밧데리를 사서 사진을 찍을 정도로 놓치기 아까운 경치였습니다. 서울서 떠날 때부터 터키는 밧데리 값이 비싸니 충분히 준비해오라는 말을 여행사로부터 들었는데 미처 준비가 안됐었나 봅니다. 우리는 버스가 올 때까지 길지 않은 시간였지만 갖가지 꽃과 배와 물이 어우러져 이뤄내는 예쁜 풍경에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마치 이태리나 프랑스 남부의 작은 휴양지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마침 휴일이라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놀러온 사람들로 항구 주변은 무척 붐볐습니다. 항구.. 2010. 10. 12.
다르다넬스 해협을 건너 트로이 관광을 마친 후, 우리는 차낙칼레로 이동하여 페리를 이용해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격전지로 유명한 다르다넬스 해협을 건너 마르마라해를 따라 이스탄불로 이동합니다. 차낙깔레에서 이스탄불까지는 약 5시간이 소요됩니다. 차낙칼레는 인구 5만 5천 명의 소도시지만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며 에게해에서 마르마라해로 들어오는 다르다넬스 해협의 입구에 있어 교통의 요충지입니다. 아시아쪽에서 유럽쪽까지의 해협의 넓이는 고작 1,200m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 작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아시아가 갈라지지만 유럽쪽과 아시아쪽 모두 차낙칼레시의 행정구역에 포함됩니다. 다르다넬스 해협은 과거 헬레스폰투스라고 불리웠는데 이 말은 그리스어로 '그리스의 문호'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이 해협은 그리스와.. 2010. 10. 9.
고대도시 트로이에서 트로이 전쟁에 이어 고대도시 트로이의 지정학적 위치와 발굴 경위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릴게요. 다르다넬스 해협은 지중해에서 이스탄불과 흑해로 들어가는 관문으로서, 전략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항상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왔습니다. 고대도시 트로이는 그 다르다넬스 해협의 남서쪽 끝(아시아 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에게해에서 6km 정도 떨어져 있고 스카만드로스강과 시모이스강이 있는 평야를 내려다 보는 히살리크 언덕 위에 있습니다. 이러한 지리학적 위치는 바다와 매우 근접하여 외부 침입의 위협을 받지도 않으며, 또 너무 멀지도 않아 교역의 어려움도 없기 때문에 문명이 발달하기에는 아주 적합했습니다. 그래서 트로이는 기원전 4,000년 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의 트로이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로만 기억되고 .. 2010. 10. 2.
트로이 전쟁 트로이 유적지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마주치는 것이 거대한 트로이 목마이기 때문에 고대도시 트로이에 대한 설명보다도 트로이 전쟁에 대해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딧세이'의 배경이 된 트로이 전쟁은 초기 그리스 사람들과 서아나톨리아의 트로이인 사이에 일어난 전설적인 싸움입니다. 이후의 그리스 작가들은 그 시기를 B.C.12세기 또는 B.C.13세기 경으로 추측했습니다. 호메로스에 따르면 10년이나 계속된 트로이 전쟁에 동원된 병사는 트로이, 그리스 연합군 양 진영을 합쳐 최소 20만 명에 달하고 트로이 침공에 동원된 그리스 함선도 1,186척에 이릅니다. 신과 영웅들이 총출동한 이 전쟁에서 그리스 연합군이 이길 수 있었던 것은 트로이 목마를 고안해낸 오디세우스의 기지때문이었.. 2010. 10. 1.
트로이를 향해 우리는 아이발륵에서의 맑고 쾌적한 기분좋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다음 여행지를 위해 그곳을 떠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이발륵에서 고대도시 트로이까지는 약 3시간이 소요됩니다. 서울을 떠날 때부터 트로이는 목마 하나 밖에 없으니 기대를 하지 말란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패키지 일정에 들어있고 또 역사적으로 중요한 도시라 그래도 가보고 싶었습니다. 터키에서는 버스로 3시간 거리는 기본이라고 말씀드렸었지요? 대부분 버스 안에서는 다음 여행지에 대한 역사적 배경이나 볼거리에 대해 현지 가이드가 설명을 해주기 때문에 지루하다는 생각은 안들었었는데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가이드가 아이발륵의 분위기에 취해 풀어졌는지 전날 술을 많이 마셔 아침까지도 입에서 술냄새가 나고 본인도 힘이 들어 더 이상 설명은 고사하고 버.. 2010. 9.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