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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동남아)

타프롬에서

by blondjenny 2010. 12. 13.

 

 

타프롬은 캄보디아에 있는 앙코르 유적군으로 불리는 많은 사원과 궁전 가운데 하나로, 12세기에

자야바르만 7세가 돌아가신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빌기 위해 만든 불교 사원입니다. 260개의 신상과

39개의 첨탑 그리고 566개의 집단 주거시설을 갖춘 이 사원을 당시 3,000명의 성직자와 12,000명의

일꾼들이 관리했다고 하니 그 규모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면적은 가로 600m, 세로 1,000m로

앙코르왓 유적에서는 큰 사원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크메르왕국 멸망 후 방치되어 지금은 이엥나무와 스펑나무 같은 열대림이 건물 전체를 덮었습니다.

현재는 사원의 4개 출입문 중에 서쪽 문만 남아있고 나머지는 모두 나무에 의해 허물어져 있었습니다.

천장과 돌기둥이 무너져 내리며 주변이 빠르게 밀림으로 뒤덮이고 있어 지금은 거의 폐허 상태로 서서히

파괴되어 가고 있는데 특히 커다란 나무 뿌리에 침식당하고 있는 모습이 괴기스러우면서도

신비스러웠습니다. 캄보디아 정부는 베어내거나, 껍질을 벗기거나, 약을 주사하는 등 갖은 방법을

동원해 나무를 죽였으나 수백 년 동안 건물 틈새로 뿌리를 내린 나무가 제거되자 오히려 건물 안전에

심각한 위협이 되었습니다. 또 이 기괴한 자연과 유적의 공존을 보려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자

나무와 유적이 뒤엉킨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기로 했습니다. 대신 성장 억제제를 정기적으로 주사해

나무 뿌리에 의한 더 이상의 파괴를 막고 있습니다. 인도는 타프롬의 복원을 담당하고 있으나 복원에

대한 논란도 만만치 않습니다. 거대한 열대의 수목이 유적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유적을

지탱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타프롬에서 거목을 제거하고 무너지고 있는

석재를 복원했을 경우, 이 유적만의 독특한 매력이 손상될 수 있고, 그냥 방치하면 유적은 더욱더

심하게 훼손될 수 있기 때문에 쉽게 복원작업을 진행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안젤리나 졸리가

라라 크로프트로 주연한 2001년 작품인 영화 툼레이더의 촬영지로 더욱 유명합니다.

사원에는 돔 형식으로 여러 개의 방이 있는데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이 '보석의 방'과 '통곡의 방'입니다.

보석의 방은 천장을 개방해 햇빛과 달빛이 비치게 했으며 벽에는 사파이어와 루비같은 진귀한 보석을

수천 개 박았습니다. 해와 달이 하늘의 중앙에 자리잡으면 보석들이 빛을 발하는데 왕은 그 빛으로

만든 사다리를 타고 어머니의 영혼이 내려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방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프랑스 식민지 시절 모두 도굴당하고 현재는 보석이 박혀있던 구멍만 남아있습니다. 통곡의

방은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를 생각하며 통곡한 방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방에서는 박수를 치거나

제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소리가 울리지 않는데 건물 벽에 기대 가슴을 주먹으로 치면 '쿵쿵쿵' 소리가

방 전체에 울립니다. 참으로 신기한 경험였습니다. 일설에는 타프롬 사원을 건축하기 위해 끌려온

백성들이 고향의 가족들을 생각하며 가슴을 치고 통곡하던 방이라고도 전해집니다.

타프롬 입구에는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지뢰의 피해를 입은 군인들입니다. 이 나라

정부가 가난해서인지 이렇게 음악을 연주하면서 살아가고 있나 본데 우리가 지나가니까 아리랑을

연주하더군요. 이어 타프롬에 들어서자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모습의 나무와 그 밑에 깔려 있는 건물

앞에서 저항할 수 없는 자연의 거대한 힘을 느끼며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관광객들은 모두 사원을 뒤덮은 갖가지 괴기한 나무 뿌리 밑에서 사진을 찍느라

분주한 모습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