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에서의 일정도 하루 밖에 안 남아서 우리는 지도를 펴고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중에서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을 몇 군데 고른 후, 몬주익 언덕에 있는 까딸루냐 미술관과 올림픽
경기장을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비가 와서 우산을 받쳐들고 사진을 찍으며
다니기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런던에서 하도 비를 많이 맞아서 익숙하긴 하지만 새로운 곳을
갈 때는 좀 간편하고 홀가분하게 돌아다니고 싶었는데 땅도 질척거리고, 시야도 뿌옇고, 카메라도
빗물이 들어갈까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황금같은 시간을 그냥 보낼 수는 없지요.
지하철에서 내려 조금 걷자 에스파냐 광장을 만났는데 빗속에 멀리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멋진
건물과 함께 어우러진 풍경은 좀전의 불평을 온데간데 없이 만들 만큼 한 마디로 굉장했습니다.
몬주익 언덕 위에 서있는 그 건물이 바로 까딸루냐 미술관입니다. 몬주익 언덕은 고도 213m로
'유태인의 언덕, 산'을 의미합니다. 수많은 유태인들이 처형됐던 이곳은 땅을 파면 해골이 나올
정도라고 해 '눈물의 언덕'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1934년에 세워진 까딸루냐 미술관은 로마네스크
미술, 중세 예술 및 건축 분야의 박물관 중 세계 최고로 손꼽힙니다. 특히 교회 벽화 컬렉션에서 세계
제일을 자랑합니다. 미술관 건물은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을 꾸몄던 아우렌티가 새로 손질을 하였으며,
11-12세기의 로마네스크식 건물을 그대로 복원하여 중세풍의 아름다움이 더욱 빛납니다. 저녁이 되면
이 미술관 정면의 음악분수에서 경쾌한 곡조에 맞추어 분수의 높낮이와 색깔들이 바뀌며 현란하게
돌아가는 분수쇼의 장관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화려한 춤을 추는 세계적인 분수쇼는 134개의 모터가
만들어내는 물줄기의 화려한 향연으로 주말 저녁이면 에스파냐 광장에는 이 분수를 보기 위해 몰려든
인파로 발디딜 틈도 없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는 저녁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 볼 기회를 놓쳤습니다.
그러나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은 빗속에서도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게 만들더군요. 우리는 야외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 언덕을 오르며 우리나라 같으면 에스컬레이터 위에 지붕을 얹지 않았을까, 비가
오면 물이 바로 들어갈텐데 고장이 나진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주변 사진을 찍었습니다.
양쪽으로 에스컬레이터가 있었는데 만약 지붕이 있다면 시야를 가려 그 경치가 그렇게 예쁘지 않고
흐트러졌을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미술관까지 올라가서 거기서 바라보는 풍경도 너무 아름다워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동양풍의 정자와 같은 탑도 보여 동서양의 건축 양식이 혼합된
느낌였습니다. 우리는 미술관을 뒤로 하고 계속해서 올림픽 경기장을 향해 걸어 올라갔습니다.
빗줄기는 차츰 약해지는 느낌였으나 그칠 기미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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