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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스페인, 포르투갈)

피카소 미술관에서

by blondjenny 2010. 4. 13.

 

큰 애가 인터넷을 뒤지더니 피카소 미술관이 매월 첫째 일요일에는 무료 입장이라고 하여 물가가 비싼
이곳에서 이게 웬 횡재인가 싶어 우리가 방문한 첫 일요일에 피카소 미술관을 가기로 했습니다. 일요일
오후에 갔더니 관광객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줄이 말도 못하게 길어 과연 이 줄 끝에 서서 오늘 중에
들어가 볼 수 있을까 갈등이 생겼습니다. 괜히 길지 않은 여행 중 아까운 시간만 낭비하는 게 아닌가

싶어 다른 데를 보러갈까 생각 중였는데 의외로 줄이 금방 금방 줄어들어 한 시간 정도 기다리니 입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내부 사진은 찍을 수도 없고, 곳곳에 경비가 지키고 있으며, 작은 애가 조그만
가방을 하나 메고 갔는데 그것도 보관소에 맡기라고 하는 둥 꽤 철저하게 관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카소를 만난다는 생각에 우리는 많이 들떠있었습니다.

고딕지구에 위치한 바르셀로나의 피카소 미술관은 14세기 경 건축된 건물을 개조한 것으로 피카소가
파리 유학을 가기 전까지 살던 곳입니다. 피카소가 젊은 시절에 그린 3,500여 점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는데 바르셀로나의 중심 고딕지구의 중세 분위기와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피카소
미술관은 천재 화가 피카소의 어린 시절의 습작에서부터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는 명소입니다. 피카소가 태어난 곳은 말라가로 그의 나이 14세 때 미술 교사를 하던 아버지를
따라 바르셀로나로 왔습니다. 그 후 가족들은 계속 이곳에서 살았지만, 그는 19세 때 그림 공부를

위해 마드리드, 파리 등으로 옮겨 다니다가 23세 때인 1904년부터는 파리에 정착해 살았습니다.

이렇게 짧은 기간 바르셀로나에 있었지만, 이곳은 그의 그림의 기초를 다져준 중요한 곳입니다.

1963년 개관한 피카소 미술관의 특징은 다른 어느 미술관에서도 보기 힘든 그의 유년, 소년, 청년

시절의 스케치나 낙서, 습작, 밑그림을 다수 소장하고 있는 점으로 대가 피카소 이전의 피카소

그림들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15세 때 그린 '첫 성체배령'과 16세 때 그린 '과학과 자비'는

어린 시절 소년 피카소의 천재적인 잠재력을 보여줍니다. 피카소는 이 작품을 마드리드 미술학교

전람회에 출품하여 가작을 받았으며, 말라가에서는 금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그림으로 인하여

처음으로 세상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청색시대라고 불리는 고뇌에 찬

청년기에 그린 그림들과 '시녀들' 연작, 만년의 입체파 작품 등이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그의 여성 편력에 걸맞게 일부는 너무도 적나라한 여인의 누드에 어디다

눈을 둬야 할지 당혹스러웠습니다.

평소 피카소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여기 전시된 작품들은 추상화로 가기 전의 초기

사실적인 작품들이 많이 있어 피카소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피카소'하면

떠오르는 것이 정상적인 모습이 아닌 비틀어지고 비대칭적인 인물이나 정물의 배치라 그 사람은

처음부터 그런 그림만 그렸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을 했는데, 사실은 일반인과 같이 사실적인

모습에 기초를 둔 그림에서 출발해서 자기 스타일을 완성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도자기,

카페트 등 미술 전반적인 분야에 도전한 그의 열정에 감탄하며 미술관을 나서면서 느낀 것은

일반적으로 어느 분야든 많은 연습과 노력을 필요로 하지만, 예술분야는 특히 노력 외에도

타고난 재능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위 그림은 16세의 피카소를 세상에 알린 '과학과 자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