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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터키)

하기아 소피아 성당을 보고

by blondjenny 2010. 6. 26.

점심식사 후, 우리는 가까운 곳에 있는 이스탄불의 대표적 건축물인 하기아 소피아 성당을
관람하러 갔습니다. 이 성당은 제가 시카고에서 건축사 수업을 들을 때부터 중요한 건축물로
여러 번 강조되고 슬라이드로 시험도 보았던 건축물입니다. 그러나 가까이서 보니 그 규모가
굉장하고, 워낙 유명한 건물이라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입구부터 혼잡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입구에서 현지 가이드가 설명을 하는데 너무 사람들이 많아 잘 들리지도 않고
부딪힐 정도라 사진찍기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실내에 들어서는 순간, 내부가 비어있어
휑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더 아름답고 경건하게 느껴져서 좀 전의 혼란이나 몸싸움은 먼 세속의
일인 양 희미해지고, 새로운 영적인 세계가 펼쳐진 것 같았습니다. 이슬람어로 표기되어 그 뜻을
알 순 없었지만 곳곳에 장식된 큰 글자들과 모자이크된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으로 더욱 신비스런
분위기였습니다. 아직도 발굴 중이라 철제 사다리도 보이고, 겉의 칠을 벗겨내면서 조금씩 원래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아마 몇 년 후에 다시 온다면 틀림없이 뭔가 더 새로워진 모습이
나타날 것입니다. 회랑과 천장 할 것 없이 사진을 찍었는데 플래쉬를 써도 그림이나 글씨가
훼손되지 않을지 걱정도 됐습니다. 보통 선진국의 박물관이나 유적지에 가면 아예 사진촬영을
막거나 플래쉬는 쓰지 못하게 하는데, 여긴 그런 제재가 없어 찍으면서도 의아했습니다. 심지어
러시아에서는 사진기 하나 당 얼마씩 돈을 내고 입장을 시키기도 합니다. 우린 시간에 쫓겨
여유있게 관람은 못하고 부분 부분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그저 휙 훑어봤다는 표현이 맞을 겁니다.

비잔틴 건축의 완벽한 걸작으로 꼽히는 하기아 소피아는 원래 정교회 대성당이며, 360년 이스탄불이
로마 제국의 새로운 수도로서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불렸을 때, 콘스탄티누스 1세의 아들 콘스탄티누스
2세에 의해서 처음으로 건립되었습니다. 그러나 404년에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를 추방시키는데
수반된 난동으로 교회가 소실되어 테오도시우스 2세에 의해 재건, 415년에 축성되었습니다. 그후 이
성당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 일어난 '니카의 반란'으로 다시 파괴되었습니다. 두 번의 소실을 겪은
후, 유스티니아누스 1세에 의해 100명의 감독관과 1만 명의 공인이 5년 10개월 만인 537년 완성하였습니다.
재건된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은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구의 소재지로서 동방정교회 제일의 격식을
자랑하였으며, 또 동로마 제국 황제의 사당으로 이용되었습니다. 세계의 교회(성당) 중 4번째로 크며,
현존하는 성당 중 가장 오래되었습니다. 본당의 넓이는 75mx70m, 천장높이는 55.6m, 돔의 지름은 33m에
달하여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높이이며, 40개의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옵니다. 중간에 기둥을
받치지 않고 올린 이 성당은 세계 8대 불가사의라고 일컬어질 만큼 과학적인 방법으로 지어졌습니다.
이후 이스탄불의 주요 사원은 모두 소피아 성당 양식을 모방하였습니다.

1453년 5월 29일,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거한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메드 2세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로부터 이 대성당을 몰수, 모스크로 사용할 것을 선언하였습니다. 이때에 대성당 내부는
십자가가 떼어지고 성화는 석회칠로 덮어지고 메카의 방향을 나타내는 미후라브가 더해졌습니다.
그후, 네 개의 미나렛(첨탑)이 증축되었으며 교회 내에는 민발로 불리는 설교 단상도 장착되었습니다.
헌당 당시, 당내에 빛나고 있었을 6세기의 모자이크는 8-9세기의 아이코노클래즘(성상 파괴운동)
때에 없어지고, 그후에 제작된 모자이크도 15세기 이후, 이슬람교 투르크의 점거 하에 거의 없어졌으나,
근년의 조사에 의하여 전실과 2층 복도의 벽면에서, 석회칠 속에 그려져 있던 9-13세기의 모자이크의
일부가 발견되어, 그 고도의 기술과 뛰어난 표현이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 1923년 오스만 제정이
무너지고 공화국이 수립되었을 때 그리스를 중심으로 유럽 각국은 하기아 소피아의 반환과 종교적
복원을 강력하게 요구했습니다. 터키 정부는 하기아 소피아를 인류 모두의 공동유산인 박물관으로
지정하고, 아야 소피아 박물관으로 개조해 그 안에서는 기독교든 이슬람이든 일체의 종교적 행위를
금지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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