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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터키)

앙카라에 도착하여

by blondjenny 2010. 7. 17.

어제의 피로를 뒤로 하고 앙카라에서 아침을 맞았는데 오늘도 한국전쟁 참전 기념탑을 시작으로 만만치
않은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 남들은 출근하기도 전인 이른 시각에 앙카라
시내 중심부에서 약 1km 지점에 위치한 3,100평 규모의 한국공원에 도착하였습니다. 그곳은 한국전에서
전사한 765명의 무명용사들의 영혼을 안치한 석가탑 모양의 기념탑과 한국의 정취를 느끼게 하는 육각
정자(현 관리사무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높이 9m의 4층짜리 ‘한국전쟁 참전 토이기(터키)기념탑’은
서울과 앙카라가 자매결연을 계기로 1973년 11월, 1년여 간 시공을 거쳐 세워진 탑입니다. 공원은 관리가
잘되어 깨끗하고 쾌적했습니다. 그렇지만 탑 옆에 새겨진 터키 군인들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보니 대부분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라 정말 미안하고 가슴아팠습니다. 그들에게 딸린 부모나 배우자, 자식은 얼마나
고통스런 세월을 보냈을까요? 우리는 그들에게 아주 큰 빚을 지고 있었습니다.

앙카라는 터키의 수도이자 이스탄불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이며 앙카라주의 주도이기도 합니다.
인구는 약 400만 명이고, 중요한 상업, 공업도시입니다. 수도가 되기 전 앙카라는 앙고라 염소와 그
질기고 긴 털로 만든 앙고라 모피로 유명했습니다. 아나톨리아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 터키의 도로와
철도망의 교차로이며 무역의 중심입니다. 앙카라의 위상은 콘스탄티노플이 로마제국의 국제 도시가
되고 나서야 가까운 지리적 조건 덕에 크게 올라갔습니다. 그후 비잔틴 제국의 도시였을 때는 아랍인들과
페르시아인들의 공격을 받았고, 1079년에는 셀주크 투르크가 점령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402년까지 약
3세기 동안 셀주크 투르크에 의해 지배됩니다. 그후 오스만 투르크가 지배하게 되는데 이 지배는 독일
편에 서서 제 1차 세계대전을 치뤄 국가의 독립이 위태로워진 상황에서 1922년 11월, 케말 아타튀르크가
술탄제를 없애고 공화국을 세울 때까지 지속됩니다. 케말 아타튀르크는 1923년 10월 13일에 앙카라를
새로운 터키공화국의 수도로 선포합니다.

이 도시는 이때부터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신시가지와 수천년 동안 시가지를 이루었던 구시가지로

나뉘어 집니다. 구시가지는 성채로 둘러싸여 있으며 아직도 많은 전통 가옥이 남아있습니다. 신시가지에는

케말 아타튀르크의 묘가 있습니다. 이 묘는 10년 간의 공정기간을 거쳐 석회암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아타튀르크의 운명일인 11월 10일은 매년 묘실을 개방하며 아침 9시 5분부터 약 1분 간 모든 차량이

멈추어 위대한 터키의 영웅 아타튀르크를 추모한답니다. 우리는 차창 밖으로 묘의 외관만 잠시 스쳐

지나갔는데 그 짧은 순간, 이렇게 국가의 대통령이 지금까지 온 국민의 영웅으로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이 우리네 현실과 비추어 너무 부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위 사진은 한국전쟁 참전 토이기 기념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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