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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미국)

미국 할머니와 함께 살기 2

by blondjenny 2009. 5. 5.

 

제가 세 들었던 이 집은 조리용 가스비와 전기세는 제가 따로 내고 난방비와 물 값은 월세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살면서 크고 작은 문제들이 끊임없이 일어났지만, 어느 추운 날 그 할머니가 우리 층에

볼 일이 있어 올라왔다가 더운 공기가 위로 올라와 1층보다 훈훈하니까 우리가 히터를 많이 켜놓은

줄 알고 내려가서는 그 날 밤 내내 히터를 꺼버렸어요. 우리는 밤새 추위에 떨다가 새벽에 일어나니

아이가 콧물이 나고 목이 아프다는 거예요. 공부가 중요한 시기에 감기라도 걸려서 아프면 어쩌나

싶어 너무 속이 상해 가까이 사는 남편과 함께 일하던 분께 연락을 했어요. 그 분이 출근 길에

들리셨는데 전 그 때 속도 상하고 춥기도 해서 앉지도 않고 서 있었어요. 그 분이 절 보시더니

'사모님, 왜 서 계세요?'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확 쏟아지는 거예요. '이제 내 편이 생겼구나' 싶어

서러움이 복받쳤나 봐요. 그 분은 자기보다 나이도 많은 상사 부인이 눈물을 흘리니까 어찌 할 바를

모르면서 사무실 가서 변호사한테 물어보고 연락을 하시겠다며 황급히 가셨어요. 오후에 그 분이

전화를 하셔서 변호사한테 물어보니 주인은 17돈가 적정 온도를 유지해줘야 할 의무가 있대요.

그래서 전 '지금 당장 히터를 키지 않으면 변호사를 부르겠다'고 써서 그 할머니가 드나드는 현관

문에 붙여 놨어요. 그랬더니 바로 히터가 들어오더라고요. 제가 원래 눈물이 많은 사람이 아닌데

그 땐 저도 모르게 실수를 해서 그 분께 너무 미안하고 창피했어요.

이사한지 한 두 달쯤 지나 여름이 되어 창문을 열려니 방충망이 없어 더운데 문을 열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방충망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저한테 '너는 호텔 룸써비스를 원하느냐'고 하면서

자기는 몸이 아프니까 모든 문제는 뉴욕에 사는 자기 딸한테 얘기를 하라고 하더니 그 주말에 딸과

사위가 왔더군요. 사위되는 사람이 자기 장모가 원래 성격이 이상하다며 저보고 미안하다고 하면서

다락에 있는 방충망을 꺼내 달아주고 갔어요. 방충망이 있으면서도 왜 그런 식으로 말을 했는지
그 할머니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남의 집에 주인과 함께 사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일인데 더구나 외국에서 남편도 없이 아이와 둘만이 산다는 건 너무 힘든 일이라는 걸 그 때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좋았던 것은 하루는 딸 아이가 2층 계단을 올라가면서 '이런 집에

살아도 엄마와 함께 있어 좋아요' 그러는 거예요. 제가 집 주인한테 시달림을 당하는 걸 보고 철이

났는지 엄마를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대요. 갑자기 가슴이 찡하면서 그 할머니가 하나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위 사진의 진달래 꽃은 원산지가 한국이라며 그 할머니의 남편이 오래 전에 앞 마당에 심은 거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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