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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미국)

샌디에고에서

by blondjenny 2009. 4. 30.

 

시카고에서 돌아온 후 큰 애는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중학교 3년 과정을 한국에서 마쳤는데 남편이 다시

미국으로 발령이 날 거라는 소식에 큰 애를 먼저 샌디에고에 사는 여동생네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미국서 돌아올 때는 한국서 대학을 간다고 생각해서 한국 공부만 신경을 썼는데 갑자기 미국을 다시

가야한다고 생각하니 미국에도 너무 고학년에 들어가면 좋은 대학 가기가 어려울 것 같은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아이가 8월에 떠났는데 그 해 10월에 IMF가 터져 환율이 800원 대에서 1,800원,

2,000원까지 가는 거예요. 그러면서 해외지점을 폐쇄하는 일이 많아 결국 다시 미국 나가는 일은 무기한

연기가 되었지요. 우리는 고민을 많이 하며 아이를 다시 한국으로 오게 할까도 생각해봤는데 이미 한국

학교에서 자퇴를 했기 때문에 다시 학교를 들어가려면 1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울며 겨자먹기로 버티기로 했습니다.

 

처음 계획은 1년만 동생 네 신세를 지면 우리가 다시 미국을 나가 같이 합칠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쩔 수

없이 고등학교 3년을 그 곳에서 보내고 대학을 가게 됐지요. 그 동안 동생 내외가 아이 뒷바라지를 하느라 

혼이 났습니다. 다른 것보다도 미국에서는 아이의 활동에 따라 부모들이 운전을 해줘야 하는데 어려서부터 

바이올린을 한 아이의 레슨이나 연주회에 데리고 다니는 일이 보통 성가신 게 아니거든요. 더구나

사춘기의 여자 조카를 데리고 있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겁니다. 우리는 우리대로 한 밤중에 전화벨이

울리면 아무리 이모가 데리고는 있지만 혹시 아이한테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그 날 밤은 잠을 설치기

일쑤였습니다. 가족이 떨어져 산다는 게 더구나 사춘기의 딸 애가 가족과 떨어져 있다는 게 모두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한국에서 일할 때 여동생이 첫 조카라 많이 예뻐하고 함께 한

시간이 많아 선뜻 아이를 맡아 줘서 아이는 뉴욕에 있는 본인이 원하는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게

됐고, 보스톤에서 대학원까지 마치게 되었습니다. 그 점은 지금도 동생 내외에게 늘 고맙고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샌디에고에는 동생도 살고 있고 아이도 가 있어 그 동안 3-4번을 들렸는데 한 번 가면 일 주일에서 열흘

정도 있다 왔기 때문에 비교적 여러 군데를 돌아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곳은 LA의 번잡함이나 오염된

공기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이 내려와 쉴 수 있는 비교적 조용하고 아름다운 휴양도시입니다. 2년

전인가 동생 네가 이사를 했다해서 보스톤에 있는 큰 애를 보고 오는 길에 들려 한 열흘 정도 있으면서

오랫만에 동생하고 수다도 떨고, 남편은 골프도 치고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잠시 그렇게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에 있다 한국엘 오면 늘 살던 곳인데도 처음엔 적응이 안되니 오랜만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한국 사회에 적응하며 살기는 참 어렵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위 사진은 샌디에고의 유명한 씨월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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