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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미국)

미국에서 그림배우기

by blondjenny 2009. 5. 12.

 

 

몇 년 전 뉴저지에 살았을 때 근처에 은퇴한 미국 할머니가 수채화를 가르치는 강좌가 있어 일 주일에

한 번씩 가서 배운 적이 있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으례 잘못된 부분을 얘기하기 보다는 잘한 부분을

칭찬해주고 격려해주는 게 몸에 밴 습성인지 인사치레인지는 모르겠지만, 늘 잘한다고만 해서 실제

배운 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단지 일 주일에 한 번이라도 그림을 그리는 시간을 갖는다는 게 좋아서

그냥 다녔지요. 그런데 그런 개방된 지도 방식과는 별개로 한 달에 한 번 그 선생님이 속해 있는 아트

클럽에 저를 데리고 가서 전문가의 수채화 실연도 보여주시고, 분기 별로 동네 도서관이나 고등학교

강당, 또는 공원을 이용해 조그마한 우리들의 작품 전시회를 열기도 하셨어요. 크리스마스 때면 우리가

직접 카드를 그려 지인들에게 보내기도 했고요. 그 후로 지금까지 저도 크리스마스 카드는 제가 직접

그려서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 게 동기 부여가 돼서 더 열심히 그리게 되고 액자에 끼우면서 마치

화가가 된 양 즐거워하기도 했습니다. 또 실제로 그런 기회에 자기 작품을 팔기도 했고요.

한 전시회에서 저는 팔 정도로 잘 된 그림도 없고 별로 팔 생각도 없어 그림 밑에 'not for sale'

(팔지 않음)이란 딱지를 붙여 놓았는데 하루는 선생님이 전화를 하셔서 어느 분이 제 그림을 사고

싶다는데 팔 생각이 있냐고 하시면서 팔고 또 그리면 되지 않겠냐고 자꾸 권하셔서 팔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그 그림이 A4 용지보다 조금 큰 사이즈라 그럼 얼마를 받아야 하냐고 여쭤 보니 신인

작가들은 한 200불(약25만원) 정도 받으면 될 거라고 하셔서 200불에 팔게 됐어요. 고양이를 그린

그림였는데 제 그림을 사신 분은 동물을 워낙 좋아하시는 분이라 나중에 그 댁에 가보니 온갖
동물 모형과 그림이 마치 박물관처럼 수집돼 있었습니다. 구리로 만든 여치까지 있었어요. 그 후에도

그 분과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카드를 교환하고 있습니다. 요새 건강이 안 좋다고 하셔서 걱정입니다.

이번 여행에서도 그 선생님을 만나 뵙고 또 아는 분이 대만에서 오신 선생님이 수채화를 가르치는데

너무 좋다고 와 보라고 하셔서 저도 4-5 번 가서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 분은 뭐랄까 수채화를 그리면서

제가 닮고 싶은 부분을 갖고 계시다고 할까, 틀을 깨는 듯한 그런 화법이 제겐 어렵지만 흥미를 느끼게

했습니다. 매 수업마다 본인이 철저하게 준비를 해 오시고 이젤에 종이를 놓고 본인이 그리는 걸 따라

하게 하는 지도 방법도 꽤 효과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이런 강의에 우리가 부담하는 금액은

얼마 안되고 대부분은 타운이나 시에서 많은 보조를 하고 있습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여기

선생님들이 받는 보수가 그리 높지 않은데도 정말 열심히 하시고 인간적으로 대해 주시는 게
인상적였습니다. 한국에서는 정식 미술교육을 받은 강사분이 대부분이라 전문적인 지도를 하시지만

개인지도가 아닌 이상 인간적으로 가까와지기는 어렵고 또 큰 대회에 참여하지 않으면 우리같은

아마추어들의 작품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도 많지 않아요. 제대로 된 전시회를 하려고 하면 비용도

엄청나고요. 그래서 미국에서처럼 작은 전시회나 그걸 통해 작품 판매도 하며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많은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위 사진은 공원에서 연 전시회에 걸린 제 작품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