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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미국)

카네기홀에서

by blondjenny 2009. 12. 16.

뉴저지 살 때 하루는 조수미공연이 카네기홀에서 있는데 참석해야한다고 해서 저와 큰 애가 나름대로

정장을 차려입고 간 적이 있습니다. 남편 회사에서 후원을 하기 때문에 표가 생겨서 직원들에게 준

모양입니다. 맨해튼을 나가면 카네기홀 앞을 자주 지나다니기는 했지만 직접 들어가본 적은 없어 우리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시간에 맞춰 가보니 입장하는 사람들이 각자 옷차림에 신경쓴 흔적이

보였습니다. 검정색 드레스를 입은 나이 많은 교포 할머니도 보이고 화려한 치장을 한 중년의 부인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음악에 대해 잘 몰라서 그런지 카네기홀에 대해 기대가 큰 탓인지 2,800석의

홀 내부는 우아하긴 하지만 명성에 비해 화려하진 않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후로도 몇 번 더 가서

좋은 연주를 즐길 수 있어 정말 감사했습니다.

카네기홀의 탄생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앤드류 카네기는 1889년 '뮤직 홀 컴퍼니 오브 뉴욕'(Music Hall

Company of New York)이라는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200만 달러(약 23억)라는 그 당시로는 어마어마한

돈을 내놓았습니다. 56번가와 57번가 사이의 한 블럭을 몽땅 사들여 사각형의 대지도 마련했습니다.

1890년 5월 13일 착공식에서 카네기 부인은 티파니 매장에서 구입한 은제 모종삽으로 머릿돌에 시멘트를

부었고 이 모종삽은 그녀가 평생 벽난로 위 선반에 두고 기념품으로 고이 간직했답니다. 공사는 7년이나

걸렸습니다. 당시 34세의 건축가 윌리엄 버넷 터실은 음향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는 아마추어

성악가이면서 첼리스트 출신으로 36년 간 뉴욕 오라토리오 소사이어티의 단원 겸 사무국장으로

일했습니다. 터실은 카네기홀을 설계할 때 몇 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1) 무대와 객석 간의 거리는 30.5m를 넘지 않는다. 2) 메아리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최초의 반사음과

직접음의 시간차는 0.9초를 넘지 않도록 한다. 3) 잔향시간을 유지하기 위해 바닥을 제외한 부분에는

목재를 사용하지 않는다.

건물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었으며 빅토리아 시대를 연상하게 할 정도로 우아한 실내장식이

눈길을 끕니다. 로비 바닥은 대리석으로 꾸몄고 로비에는 조각장식을 곁들인 기둥이 서 있습니다.

카네기홀은 뉴욕에서 철근을 쓰지 않고 석재로만 지은 건물 중 대표적인 것으로 손꼽힙니다. 그대신

건물 벽체는 매우 두텁게 처리했는데 카네기홀의 뛰어난 음향은 이 두터운 벽체에 기인한 바 큽니다.

1986년 7개월 간의 개보수 공사로 카네기홀에 엘리베이터가 처음 설치되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카네기홀의 메인 홀인 아이작 스턴 오디토리엄의 맨 꼭대기층까지 가려면 105개의 계단을 거쳐야 했습니다.

카네기홀은 1964년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었고, 1991년 뉴욕 100년사 협회에서 주는 금메달을 수상했습니다.

초대 극장장인 아이작 스턴은 생전에 카네기홀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카네기홀은 그 자체가 하나의

훌륭한 악기다. 연주를 그대로 전달해주고 때로는 실제보다 더 과장해 보여준다.' 이 말은 연주를 잘 하면

더 잘 한 것처럼 들리게 하고 연주를 망치면 더 못한 것처럼 들리게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연주자들이

카네기홀 무대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