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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미국)

미국과 한국에서의 명절

by blondjenny 2010. 1. 15.

 

 

미국에 살면서 한국이 그리울 때는 아무래도 명절이 아닌가 합니다. 설이나 추석이 되면 한국에 있을

때는 전 날부터 큰 집에 가서 나물하고, 전 부치고, 국 끓이고, 떡도 하고 몸은 고달프지만 그래도 오랫만에

친척들도 만나고 동서와 수다도 떨고 하는 그 시간이 좋았어요. 저희는 남편이 남자 형제가 셋, 여자

형제가 셋 모두 육형제인데 명절이면 삼동서가 각기 맡은 임무가 있어 분업이 잘 이루어져 있습니다.

저는 둘째인데 큰 형님은 장보고 약식과 식혜 등 전반적인 것을 담당하고 저는 전 날 가서 나물하고

국끓이고 고기를 손질하고, 막내 동서는 직장을 다녀 전을 집에서 부쳐가지고 당일 날 옵니다. 20여

년 이상을 이런 체제로 하다 보니 이젠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척척 알아서들 하지요.

형님하고 저하고는 한 살 차이인데 결혼은 한 달 간격으로 해서 시집에 같이 들어온 거나 마찬가지예요.

그렇지만 형님은 결혼하면서부터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기 때문에 저보다 훨씬 더 스트레스를 받았지요.

그래도 같은 때 결혼을 해서 제가 미국 가기 전까지 아주 가깝게 지냈었습니다. 서로 남편에 대한

불만이나 시댁에 대한 하소연을 하며 답답합을 풀곤 했어요. 명절이나 생신, 제사 같은 때 가면 일은

뒷전이고 서로 수다를 떠느라 때로는 김을 굽다 태워먹은 적도 많습니다. 막내 동서도 씩씩하게 일을

잘해서 저희 셋이 모이면 웃고 떠들고 농담하고 재미있게 지내 시댁 다른 어른들이 저희를 보시고 보기

좋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잘 지내다 미국을 가니 명절이 돼도 특별한 일도 없고 그나마 남편이 미국에 있을 때는 회사의

제일 높으신 분 댁에서 저녁 식사를 같이 하거나 추석 때는 송편을 해서 돌리는 일도 있었지만 아이와

둘이 있을 때는 설사 회사에서 불러줘도 남편없는 자리에 다른 부부들하고 같이 앉는 게 불편해서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평일 날과 다름없이 지나가는 게 너무 서운해 한국 식품점에서

송편을 사다 먹거나 떡국을 끓여 먹기도 했어요. 특히 대보름 같은 때는 미국에서는 음력이라 기억도

못하고 지나기 일쑤고 기억한다 해도 갖가지 나물이나 찰밥이 그리워 해먹고 싶었지만 손이 너무

많이 가고 제대로 된 재료도 없어 한 두 가지 나물만 해서 살짝 기분을 내곤 했습니다. 그럴 때면
서울에 있는 식구들 얼굴이 떠오르고 엄마가 해주셨던 오곡밥이 생각나 빨리 서울가서 북적이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