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이야기 (동유럽, 독일)

크로아티아의 내전

by blondjenny 2013. 2. 5.

 

 

플리트비체로 가는 길에 가이드가 꼭 보고 가야 할 곳이 있다며 길에 차를 세웠습니다.  그곳은 내전으로 

인한 전쟁의 잔재가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인데 가이드가 간단히 설명을 하면서 얼른 가서 사진을 찍으라고 

하더군요.  대포와 비행기, 총탄이 스쳐간 자리가 선명한 무너진 건물의 모습이 너무 끔찍했습니다.  

여기서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과 보스니아 전쟁에 대한 배경을 잠시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 당시 뉴스를 

통해 늘 듣긴 했지만, 워낙 복잡한 내전이고, 관심도 적어 우리 같은 외부인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관광상품이 되어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는 현실이 더 안타깝더군요.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은 1991년 - 1995년까지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에서 독립을 선언한 

크로아티아세르비아 정부로부터 충성을 강요 당하고 유고슬라비아 인민 군(JNA), 세르비아 지역 

군과의 전투를 말합니다. 1992년에 크로아티아와 JNA와의 전투는 크로아티아가 전쟁 초기 선언했던 

세 가지의 독립과 국경 보존의 목표를 달성하고 승리합니다.  크로아티아에서 이 전쟁은 주로 대 

세르비아의 침략이나 조국 전쟁으로 불립니다.  

 

처음에는 크로아티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크로아티아 경찰과 거주 중인 세르비아 인의 충돌이었습니다. 

세르비아는 효과적으로, 가능한 한 크로아티아를 정복하려고 했습니다.  전쟁을 시작할 때, JNA는 

강제적으로 전체를 점령하여 유고슬라비아에 크로아티아를 유지하려고 했으나 실패하였습니다.  

1991년 말까지 크로아티아의 대부분과 수많은 도시들은, 전투로 인해 많은 손상을 입었습니다.  

1992년 1월 독립 후, 크로아티아 공화국은 주권국가임을 선언하고, 국제연합 평화유지군(UNPROFOR)을 

주둔시키고 입지를 굳혔으나, 전투는 3년 후까지 간혈적으로 일어났습니다.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는

점차적으로 협력을 증가시키고 있지만, 아직까지 일부 긴장감은 여전합니다.

 

보스니아 전쟁은 1992년 4월 1일 - 1995년 12월 14일까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 보스니아 인

크로아티아 인세르비아 인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을 말합니다.  이 전쟁은 구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된 이후 벌어진 유고슬라비아 전쟁의 일부입니다.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든 시점에서 불 붙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내전은 세르비아 인이 주도권을 쥐고 있긴 했지만, 

헤르체고비나를 중심으로 시작된 크로아티아의 공세도 격렬했습니다.  전쟁이 장기화되고 세르비아 인에 

의한 민족청소가 자행되자, NATO가 전쟁에 개입하였습니다.  이 전쟁의 결과, 데이턴 평화협정이 

체결되었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독립합니다. 

 

세르비아 왕국제 1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한 이후 보스니아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를 자국 영토로 

편입시켰습니다.  이 지역에는 많은 민족들이 모여 있어 민족 간의 반목이 있기도 하였으나, 티토는 

유고슬라비아 내의 여러 민족들을 잘 융화시켰습니다.  하지만 티토가 사망한 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유고슬라비아 연방으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하자 세르비아 인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지원 아래 보스니아 전쟁을 일으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