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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발칸 1)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 인민궁전

by blondjenny 2014. 4. 9.

 

우리는 시나이아 수도원을 떠나 루마니아의 수도인 부카레스티로 약 2시간에 걸쳐 버스로 이동을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어느덧 주위가 어두워졌습니다. 사실 일정 상에는 부카레스티 관광은 다음 날 아침이었으나, 주변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부카레스티의 유명한 차우세스쿠 인민 궁전과 혁명기념비 관광을 강행한 겁니다. 

동유럽이나 발칸 관광 시에는 서울서부터 같이 간 가이드 외에 현지에서 가이드가 조인하여 일정을 소화하게 

됩니다. 제 생각에는 다음 날 현지 가이드를 부를 경우 또 하루 치 일당을 주어야 하니 그냥 하루에 관광을 다 

마치려 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거나 우리는 잘 보이지도 않는 어둠 속에 사진 몇 장을 찍고 버스에 

올랐는데 너무 화가 난 다른 관광객들이 우리 가이드에게 항의를 했는지 다음 날 아침에 다시 관광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밤에 찍은 야경과 다음 날 아침에 찍은 사진, 두 종류를 갖게 되었습니다.

 

니콜라에 차우세스쿠(1918-1989)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1930년 대부터 공산당 활동에 돌입했으며 

감옥에 있을 때 만난 역시 공산당원인 게오르게 게오르기우데지를 만나 그의 심복이 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그는 정적들을 제거하며 루마니아 공산당 서열 2위의 자리에까지 오르고, 1965년 게오르게가 죽은 후로는 

루마니아를 통치하게 됩니다. 1965년부터 1989년 총살되기 며칠 전까지 루마니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국가 원수

(1974년부터는 대통령)를 지냈으며, 1989년 공산주의 정권이 무너지자 도주를 시도하다 총살되었습니다. 그는 

김일성의 절친한 친구로, 김일성을 정치 선배로 생각했으며 특히 북한의 세습체제를 매우 동경하였습니다. 북한을 

방문한 차우세스쿠는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보고 감탄을 했고, 주체사상을 모방하여 자신을 ‘가르파티아 산맥의 

천재’라는 칭호로 일컬으며 우상숭배의 대상으로 발전시킵니다. 또한 북한 방문 당시 김일성의 주석궁을 보고 

충격을 받은 차우세스쿠는 자신도 주석궁보다 더 좋은 궁전을 갖기를 원했고, 이 호화로운 궁전을 1983년에 

건설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모든 건축 재료는 루마니아 산을 썼는데 3,500여 톤의 수정, 480개의 샹들리에, 

1,400여 개의 천정용 전구와 거울을 만들었고, 70톤 이상의 철과 청동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방은 1,000여 

개에 달했으며, 집무실과 연회장은 모두 대리석으로 꾸몄고 벽, 천장, 심지어 화장실도 금을 도금하는 식으로 

치장을 하였습니다. 거기에 저격수의 사거리까지 계산하여 자신이 저격되는 일이 없도록 하였습니다.

 

미국의 펜타곤 면적과 맞먹는 이 궁전을 짓기 위해 차우세스쿠는 당시 그곳에 살고 있던 주민들을 내쫓았고 7만여 

명이 하루 아침에 자신의 삶의 터전을 잃고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만 했습니다. 당시 루마니아에는 인구 2,000만 명에 

300만 개의 도청기와 1,000여 개의 도청센터가 설치될 정도로 빈틈없는 감시 때문에 차우세스쿠 치하의 루마니아 

국민들은 집안에서조차도 자유롭게 말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1987년 브라소브에서 이미 반 차우세스쿠 운동이 벌어졌고, 1989년 동유럽에 자유와 민주화의 바람이 불어

동유럽의 공산주의 국가들이 모두 체제가 붕괴되고 민주화의 길로 들어서자 루마니아 역시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1989년 12월 20일에는 부카레스티에서 10만 명의 시위가 확산되고 격화되자 군인은 반기를 들고

시민 측에서 대통령 친위대와 교전하여 루마니아는 내전상태에 빠졌습니다. 이에 헬기를 타고 북한으로 도주하려던

차우세스쿠 부부는 헬기 조종사의 변심으로 마침내 체포되었습니다. 12월 25일 특별군사법정에서 차우세스쿠 부부는 

처형을 당하는데 그들의 몸에 100여 개의 총탄이 박혔다고 합니다.

 

이로써 인민궁전 완공 후 발코니에서 멋지게 연설을 하려던 차우세스쿠는 사라지고, 실제로는 마이클 잭슨과 

파바로티가 이곳에서 공연을 했다고 합니다. 공산주의식 건물이 대체로 그러하듯 광장에는 미적 감각은 떨어지고 

무지막지하게 크기만한 사각형 건물이 우뚝 서있었습니다. 현재는 일부가 의회 건물로 사용된답니다. 건물이 

옆으로 너무 길어 한 장에 다 담기도 어려웠습니다. 씁쓸한 기분으로 사진을 찍고 뒤 돌아섰지만, 그래도 이 

건물을 보러 오는 관광객 덕분에 루마니아 국민들이 조금은 보상을 받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