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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이태리)

피사에서 추억을 되새기며

by blondjenny 2018. 10. 18.



피사는 젊어서 피렌체로 출장을 다닐 때 이미 다녀왔고 또 아이들과 서유럽 여행 때도 다녀온 곳입니다.  

피사는 피렌체에서 가까워 한나절이면 충분히 다녀올 수 있는 곳입니다.  처음 방문 했을 당시는 둘째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피렌체 출장을 가게 되었는데 일이 끝난 후 같이 간 동료와 피사를 구경하기로

했었습니다.  피사에 온 이상 사탑을 안 오를 수가 없어 맨 꼭대기 종탑까지 수많은 대리석 계단(294개)을

오르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올랐는지 대리석 계단이 움푹 움푹 파였더군요.  저는 이러다 잘못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있어 가능하면 천천히 올라 마침내 종탑을 보고 한 바퀴 돌아 보는데 경사진 바닥 

때문에 바깥으로 미끄러져 떨어질 것 같은 아슬아슬함을 느끼고 내려온 기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피사의 사탑으로 유명한 이 도시는 원래 11세기 말에 스페인과 북 아프리카의 무역으로 크게 번영했던 

공화국으로 베네치아나 제노바와도 패권을 다툰 해운 강국이었습니다.  13세기에 이르러 제노바에 

패하였으나 중요한 철도 교차점이며, 경공업의 발달로 도시가 번창해졌습니다.  또한 문예의 중심지로서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배출한 대학 도시로 명성을 떨치고 있습니다.  갈릴레이는 피사의 사탑에서 ‘낙하 

운동의 법칙’을 실험했다고 하는데이런 실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사탑이 기울어진 덕분입니다.  


도시 중심을 가로지르는 아르노 강을 기준으로, 피사의 사탑과 대성당이 위치한 북쪽의 구 시가지와

기차역이 있는 남쪽의 신 시가지로 나뉘며, 피사의 사탑을 포함한 두오모 광장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피사가 누렸던 번영은 벽돌과 돌로 지어진, 사람이 거주하는 높은 탑인 

카사토레와 두오모 대성당, 세례당, 종탑(피사의 사탑)으로 이루어진 웅장하고 훌륭한 교회 건물들에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세례당과 대성당은 유명한 조각가들의 작품으로 계속 장식되었는데, 세례당의 

설교단(1260)은 니콜라 피사노. 대성당 최초의 설교단(1162)은 굴리엘모 피사노, 청동문(1180)은 

보난노 피사노, 현존하는 대성당의 설교단(1310)은 니콜라의 아들 조반니 피사노 등이 조각했습니다.


피사의 사탑은 1173년 건축가 보난노 피사노가 건축을 시작했지만,  10m 높이에 이르렀을 때, 지반이 

내려 앉아 공사를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사탑을 건축했던 곳이 모래로 된 약한 지반이었고토대를 3m 

밖에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중단된 공사는 다시 재개되어 1350년 완공되었습니다.  하지만 

완공한 뒤 1년마다 1mm 정도씩 기울어지기 시작하여 이대로 계속 기울어지면 무너질 수 있다는 경고 

때문에 1990년에 대대적인 공사를 시작하여 2001년 6월 완료되었습니다.  탑이 기울어진 가장 큰 

이유는 꼭대기에 있는 종 때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종의 무게가 총 6톤이 넘는데현재는 절대 

움직이지 못하도록 T 자형 철골로 고정 시켜 놓았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 때 크게 파괴되었으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탑을 보기 위해 여전히 관광객이 넘쳐

납니다.  관광객이 너무 많아 소매치기도 많고, 서로 부딪쳐서 걷기도 힘들었지만, 다시 봐도 

불가사의한 멋진 사탑이 오래 오래 잘 버텨주기를 바라며 발길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