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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미국)

프릭 컬렉션을 마주하다

by blondjenny 2020. 11. 10.

미국은 10년 가까이 산 곳이라 전문가의 안내 없이도 비교적 자유로이 다니기 때문에 방문 시 시간이 충분하면

박물관을 한 번씩 들립니다. 그 동안 맨해튼에서 메트로폴리탄, 모마, 구겐하임 박물관 등을 다녀왔는데 새로운

곳이 없을까 하고 아이에게 물었더니 프릭 컬렉션을 추천하더군요. 박물관 관람은 보통 많이 걷기 때문에 좀

힘들긴 하지만, 이왕 맨해튼을 나가면 박물관 말고도 볼거리가 많아 많이 걷게 됩니다. 맨해튼은 주차비도 비싸고,

또 차 없이 걸어 다니면서 구경을 해야 조금 자세히 볼 수 있어 발품을 팔 수밖에 없습니다. 뉴저지 집에서 뉴욕

맨해튼의 박물관을 가려면 버스를 타고 또 지하철을 타야 하지만 새로운 박물관을 볼 수 있다는 기대에 힘든 건

나중 문제고 물병 하나 들고 집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벼웠습니다.

 

맨해튼 센트럴파크 동쪽 지역 어퍼이스트 70번가에 공원을 조망할 수 있는 곳에 3층짜리 프랑스 스타일의 대리석

건축물이 있습니다. 100년 전쯤 헨리 클레어 프릭은 조용한 고급 주택가에서 남은 여생을 여유롭게 보내고자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1913년 그 저택이 완공된 후 5년 만에 그는 세상을 떠나 실제로 여유로운 삶을 즐길 시간은 길지

않았습니다. 그는 1849년 펜실베니아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초 카네기 강철 회사에 입사, 대표까지 올라 카네기 회사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카네기는 그의 공로를 높게 평가하지 않아 결국 그는 카네기

회사에서 나와 US 스틸 회사를 차려 독립합니다. 그는 1800년대 후반 미국 경제의 붐을 업고 철강과 석탄 사업으로

큰 돈을 벌었습니다. 그는 당시 뉴요커들이 가장 증오하는 기업가 가운데 한 명이었습니다. 그의 부에 대한 욕망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독과점법 등 불공정 거래를 단속하는 정부의 법망을 교묘히 피해가는 등 뛰어난 수완을 발휘해

막대한 부를 일궈냈습니다. 한때 앤드류 카네기와도 동업했던 철강업계의 양대 산맥입니다. 

 

1912년 유럽 방문 중에 그는 타이타닉호에 탈 뻔했으나 승선 직전에 부인이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취소해 위기를

넘겼습니다. 암살과 타이타닉이라는 두 차례 죽음의 문턱을 피했으나 결국 69세에 숨졌습니다. 그의 부인은 1931년

사망하면서 뉴욕 시에 이 건물을 기증했고, 1935년 16개의 방을 가진 박물관으로 재단장되었습니다. 기증 조건으로

'순수미술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공공 미술관을 건립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가 기증한 미술품은 131점의

그림을 비롯해 조각, 드로잉, 판화, 장식품, 가구, 도자기, 러그, 은기구 등 1,100여 점입니다. 그는 조각, 그림 등

미술품들을 유독 좋아했으며 특히 16세기 네델란드의 천재 작가 렘브란트, 페르메르와 고야, 엘 그레꼬 등의 작품을 

주로 수집했습니다. 12세기의 중동 아라비아의 금박 그림과 조각도 그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내부를 들여다 보면 아름다운 그림이 가득해 미술관이라기 보다는 어느 고급 저택에 들어온 듯 아늑하고 따뜻한 느낌을

줍니다. 프릭 컬렉션이 뉴욕의 명소로 각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지 고즈넉한 분위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프릭은

비록 사업가로서 거친 삶을 살았지만 미술품 구입에 관한 한 섬세한 안목과 감성을 발휘했습니다. 미술박물관이 된

그의 저택은 평일에 일반인들은 20여달러의 입장료를 내야 들어갈 수 있지만, 일요일 오후는 무료로 개방되고 뮤직

공연이 열립니다. 이런 박물관들이 보통 주 중 하루나 오후는 무료로 개방을 해서 일반인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어

너무 좋습니다. 단 내부 전시품은 촬영 금지라 보여 드릴 수 없어 많이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