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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미국)

이스트 빌리지를 가다

by blondjenny 2011. 3. 23.

우리는 첼시마켓을 나와 예술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이스트 빌리지를 향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적당한 습도와 따스한 햇살은 발걸음을 더 가볍고 상쾌하게 해주었습니다. 걸으며 주변에 색다른

건물이나 교회가 나타나면 사진도 찍고, 조금씩 물들어가는 가로수도 감상하며 계속 걸었습니다.

명문 대학인 '쿠퍼 유니온'도 보이고 거리의 밴드도 보이니 이스트 빌리지에 가까운 것 같았습니다.

 

길을 건너려 신호를 기다리는데 가로등에 붙인 타일 모자이크가 눈에 띄었습니다. 특별한 디자인이라기
보다 그저 남는 타일 조각을 여기저기 붙인 것 같이 보이는 그런 가로등이 곳곳에 있어 우선 사진을

찍고 나중에 큰 애한테 사연을 들었습니다. 사연인 즉, 베트남 참전 용사이며 수년 간 노숙자였던

짐 파워라는 62세 된 노인이 지난 26년 간 가로등에다 하나 둘 타일 조각을 붙이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타운에서 철거하려 했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지금에 이르렀답니다. 최근에는 23살짜리

뉴요커의 도움으로 같이 작업을 한다고 하는데 이 23살 남자는 할아버지의 일을 계속 유지하고 배우고

싶어서 1997년도에 시작하고 여전히 끝내지 못한 가로등 하나를 지금 같이 완성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 할아버지도 유명인사가 되었으며 가로등은 동네 명물이 되어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스트 빌리지에는 이 외에도 볼거리가 많지만 특이한 것은 어찌나 일본 레스토랑, 수퍼,

상점이 많은지 놀랬습니다. 거리에는 까만 머리의 동양인들이 넘쳐흐르고, 일본 음식 냄새가 코를

찌르며, 간판은 일본말 일색였습니다. 물론 영어를 쓰기는 하지만 일본말이나 한자만 알아도 사는 데

지장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흔히 코리아타운이나 차이나타운이라는 말은 들었어도 재팬타운이라는

말은 못 들어봤는데 여기는 재팬타운이라고 해도 될 것 같았습니다. 일본을 옮겨놓은 듯한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이스트 빌리지는 그리니치 빌리지의 동쪽 휴스턴가에서 부터 14번가로 둘러싸인 지역으로 극작가

유진 오닐, 영화배우 더스틴 호프만과 같은 유명인들이 자신의 거처를 마련해 지냈던 곳입니다.

그러나 LA의 비벌리 힐즈 같은 부촌이 아니라 부랑인들부터 부유층까지 인종과 계급이 뒤섞여 있는

곳입니다. 예쁜 집들과 신비로운 골목길, 나뭇잎이 무성한 마당과 벽화들이 많은 이곳은 오 헨리의

단편소설 '마지막 잎새'에 등장하는 예술가의 마을로도 잘 알려진 곳으로 보헤미안의 신비롭고 예술적인

분위기를 그대로 갖고 있습니다. 밝은 낮에 산책하듯 걷는 것도 좋지만 밤이 깊어갈수록 더욱 그 활기를

찾는데, 심야 커피점과 까페, 실험극장, 음악클럽, 재즈공연장 등이 많고 또 대중에게 다가가면서도

수준높은 프로그램으로 많은 예술인과 잠재적 예술인들이 찾는 곳입니다. 우리도 가로등이 켜질 

때까지 돌아다니다가 지하철을 타고, 또 버스로 갈아타고 지쳐 졸면서 밤하늘에 별이 보일 때가 

돼서야 집에 돌아왔습니다.

 

*위 사진은 짐 파워가 만든 가로등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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