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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미국)

시카고에서 요리실습

by blondjenny 2009. 4. 12.

 

제가 시카고에 가기 전까지는 집안 살림이라고는 별로 해본 게 없었어요. 아이를 낳을 때 산휴 두 달

외에는 늘 직장생활을 했었고 일하는 걸 너무 좋아하고 제 일에 자부심을 가져서 그만둔다는 건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이는 친정 어머니께서 가까이 사셔서 아침이면 출근하시듯 저희 집에 와서

봐주시고 저녁에는 돌아가시고, 낮엔 일하는 아주머니가 와서 음식이나 빨래는 다 했었거든요. 전 겨우

밥이나 하고 해놓은 반찬에 먹고 나면 설겆이를 하는 정도였지요.

 

그렇게 지내다 남편따라 시카고를 가니 주위에 도와줄 사람은 하나도 없고 모든 살림을 제가 해야 하고

아이도 키워야 하고 모든 게 익숙치 않은 일뿐였습니다. 그 당시는 본사에서 손님이 오면 집에 초대하는

게 당연하고 또 그게 더 성의있는 것 같아 대부분 집에서 손님 접대를 많이 했어요. 저도 어쩔 수 없이

손님을 접대해야 하는 일이 빈번하게 있었는데 할 줄 아는 게 거의 없었지요. 제가 처음 해 본 게 깍두기를

담근 거였어요. 김치보다는 쉬울 것 같아 담갔는데 익히고 보니 약간 짜서 뭘 넣어야 할까 궁리를 하다가

설탕을 약간 넣었어요. 그랬더니 그 맛이 정말 맛있어서 대성공였습니다. 한 번은 몇 집이 캠핑을 가면서

각자 불고기를 재 가지고 가서 먹었는데 제가 양념에 생강을 약간 넣었더니 조금 독특한 맛이 나서 최고로

인기가 좋았어요. 그 후 제가 엄마한테 편지로 시카고에서 음식으로 이렇게 날리는 줄 모를 거라고 쓴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그런 건 제대로 배운 요리가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는 먹을만 했지만 손님상에

내놓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어요.

그 후로는 요리책도 열심히 보고 전에 먹었던 맛을 생각하며 그 맛에 가까운 맛을 내려고 노력을 했지요.

그렇게 하나 둘씩 배워나가고 실습할 기회가 많다보니 자연히 솜씨도 늘더군요. 저는 서울식이라 김치를

담글 때에도 젓갈을 많이 넣는 편이 아니고 새우젓과 멸치액젓만 넣으니까 맛이 담백하고 시원한 편예요.

시중에서 사먹는 김치는 아무래도 우리 입맛과는 다른 부분이 있어 지금까지도 김치는 되도록 사먹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 시카고에서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을 만났더니 저의 집에서 먹었던 김치맛을 기억하며

그 김치가 먹고 싶다고 해서 갑자기 집으로 데려와 같이 먹으며 옛날 얘기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아마 제게 시카고 시절이 없었으면 평생 지금만큼도 음식을 못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