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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미국)

피츠버그에 대하여

by blondjenny 2015. 2. 16.

 

작은 애가 카네기 멜론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는 바람에 학부 시절 졸업식을 포함해서 두 번, 또 대학원 시절인 재작년 말부터 작년

초에 걸친 겨울과 봄에 또 두 번, 합쳐서 네 번 피츠버그를 다녀왔습니다. 그래서 피츠버그의 풍경이 낯설진 않습니다.  뉴욕이나

다른 대도시만큼 화려하지도 않고. 큰 쇼핑몰도 별로 없지만, 학생들이 내뿜는 에너지랄까 문화는 나름 신선하고 여유가 느껴져

저는 좋았습니다. 아이가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면 피츠버그를 일부러 찾을 일은 없을 것 같아, 아이가 있는 동안 한 번이라도 더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물론 겨울에는 눈도 많이 오고, 바람도 심하고 황량하지만, 봄과 여름에는 넓은 잔디밭에 나무가

많고, 숲이 우거져 녹음이 참 좋습니다. 그만큼 가을 낙엽도 아름다운 곳입니다.

 

피츠버그미국 펜실베니아 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입니다.  어렸을 때 위인전에서 세계 철강왕 카네기라는 이름을 본 적이

있으실 겁니다. 사회시간에 피츠버그는 공업도시라고 배우셨을 겁니다. 피츠버그는 제철도시로서, 18세기에 영국인이 본국의

수상 피트의 이름을 따서 포트피트라고 부른 것이 이 도시의 시초입니다.  세계 최대 석탄지대의 중심이며, 미국의 석탄과 철강의

주산지입니다.  이 밖의 주요 공업으로는 알루미늄제품, 전기기구, 유리제품 등이 있습니다. 

 

1946년 시장 데이비드 로런스, 재정가 리처드 멜론과 다른 도시의 지도자들은 도시 재개발 프로그램을 시작하였습니다.  피츠버그의

공해와 물을 정화하기 위해 엄격한 연기 배출조절과 수자원 공해조절 프로그램을 시행하였으며, 1960년 대에 대부분 정화의 결실을

맺었습니다. 피츠버그 르네상스로 알려진 도시 재개발의 첫 단계는 1970년대 초반에 이루어졌습니다.  두 번째 르네상스는 1980년

대에 시작되었으며, 컨벤션 센터, 전차, 지하철 시스템과 초고층 빌딩이 건설되었습니다. 피츠버그 대학은 1787년에 인가를 받았고,

그 밖에 카네기 멜론 대학(1900), 두케인 대학(1878), 채텀 대학(1869) 등의 다양한 고등 교육기관들과 멜론 재단 등이 있습니다. 

카네기 재단에는 200만 권의 장서를 갖춘 도서관, 미술관, 자연사 박물관, 카네기 음악당 등이 유명합니다.  피츠버그는 작곡가

포스터와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의 출생지로 그들을 기념하는 박물관이 있습니다. 

 

앤드류 카네기는 스코틀랜드 던펌린에서 섬유를 만드는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가 구멍가게를 운영하였지만 좀처럼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카네기 집안은 1848년 미국 펜실베니아 주 피츠버그로 이주합니다.  어려서부터 얼레잡이, 방적공장

노동자, 기관조수, 전보배달원, 전신기사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1853년 펜실베니아 철도회사에 취직하게 됩니다.  남북전쟁에도 

종군하였고,1865년까지 이곳에서 근무하는 동안, 장거리 여행자를 위한 침대차와 유정사업 등에 투자하면서 큰 돈을 벌었습니다.

1902년 1월 29일 당시로서는 천문학적 액수인 2천5백만 달러(약 270억 원)를 기부하여 공공도서관 건립을 지원하는 워싱턴 카네기

협회를 설립했고, 미국 전역에 2,500개의 도서관을 지었습니다.  카네기는 그 밖에도 카네기 회관, 카네기 공과대학, 카네기

교육진흥재단 등 교육, 문화 분야에 3억 달러 이상을 기증하였으며, 현재 국제사법재판소의 건물인 평화궁과 카네기 멜론

대학교를 설립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