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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그리스)

스파르타의 덧없음을 보고

by blondjenny 2020. 1. 9.

미스트라스 유적지를 떠나 다음 여행지로 갑니다.  그곳은 스파르타인데 스파르타라고 하면

우리에게는 스파르타식 교육이 먼저 떠오르고 막연히 엄격하고 규율에 얽매인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실제 남아 있는 유적지는 어떤지 살펴보겠습니다. 

 

 

미케네 문명이 멸망한 직후, 고대 그리스의 암흑 시대에 스파르타 지역에는 4개의 정착촌이 있었습니다.

 

이 중 2개의 정착촌이 동맹해 다른 2개의 정착촌을 멸망시킨 것이 스파르타의 기원으로, 스파르타 특유의 

 

이중왕(Dual King) 제도도 여기에서 기인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스파르타는 BC 9-8세기 경에 그리스의 

 

펠로폰네소스 반도 중부, 유로타스 강 서쪽 연안에 도리아인이 세운 그리스의 고대 도시국가로 귀족 

 

정치를 실행하여 본토인을 노예화하고 자국민에게 군국주의 식의 교육을 실시하였습니다.  BC 5세기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를 격파하고 그리스의 패권을 잡았으나 점차 쇠퇴하여 BC146년에 로마에게 

 

멸망당했습니다.  1204년 이후 프랑크족이 스파르타 남서쪽에 새로운 성채 도시 미스트라를 세워 약 2세기

 

동안 번영을 누렸으며, 1460년부터 투르크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스파르타는 미케네 문명이 파멸할 때 살아 남은 몇 안 되는 도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테네와도 비슷한데

 

스파르타는 특히 미케네 문명 시대의 전통이 잘 보존된 도시로 여겨집니다.  스파르타 특유의 집단 전사

 

문화와 자유로운 여성 문화는 미케네 문명 시대의 그리스 전사 문화와 유사한 점이 상당히 많습니다.

 

 

 

스파르타라고 이름 붙은 곳을 가니 영화 300을 통해 잘 알려진 레오니다스 왕의 동상이 큰 방패와 특유의

 

투구를 쓰고 서서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고대 스파르타 유적지에는 어이없게도

 

주춧돌과 돌 무덤만 있을 뿐 그 흔한 돌 기둥조차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옛 라이벌 아테네가 지금도 

 

그리스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인 것과는 달리 현대 스파르타는 그냥 지방 중소 도시가 되었습니다.  

 

전 세계인이 그 이름을 알 만큼 이름값이 높은데도 여기가 그다지 관광지로 알려지지 않은 것은 아테네에 

 

비해 고대 스파르타인들이 자기들이 가진 국력에 비해서 대규모 건축물을 만드는 데 돈을 많이 안 쓴 

 

검소함 때문에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이 별로 없어서기도 합니다.  그렇게 강하던 국가가 왜 이렇게

 

변변한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까 하는 생각에 세월의 덧없음을 느끼며 발길을 돌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