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이야기 (동유럽, 독일)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가다

by blondjenny 2012. 9. 15.

 

점심 식사 후,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둘러 보기로 하였습니다.  영화나 책을 통해 이미 많이들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15년 전에 이곳을 보았을 때 너무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특히 유태인들이 가스 실로

가기 전에 벗어 놓은 안경, 신발들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고, 그들의 머리카락으로 짠 조끼나 카펫을

보았을 땐 구토가 날 뻔했습니다.  이러한 나치의 만행은 현재 독일 역사교과서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습니다.  독일은 일본과 달리 자신들의 만행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사죄하고 후손들에게 교육하는

모습에서 진정한 대국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나치 독일유태인학살하기 위하여 만들었던 강제 수용소폴란드

오슈비엥침에 있습니다.  이곳에서 처형된 사람들은 유태인, 로마인, 소련군 포로, 정신질환

가진 정신장애인, 동성애자, 기타 나치즘반대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나치가 세운 강제수용소

중에서 최대 규모였습니다.  1945년 기준 약 600만 명(유럽 전체 유태인의 80%)이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1941년 9월, 소련군 포로와 유태인 수용자들이 처음으로 독가스 실에서 학살당했습니다.  독가스

실에서는 한 번에 약 2,000여명의 수용자가 학살당했는데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노동력이 없는

노인과 여성, 그리고 어린이들이었습니다.  독가스 실은 대개 샤워실의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나치는 학살 피해자들에게 샤워를 하라고 하여 옷을 벗게 한 뒤, 가스 실에 보내어 학살하였습니다. 

이들의 시체는 시체 소각로에서 대량으로 불태워졌는데 하루에 약 1,500-2,000구의 시체가

소각되었습니다.  그들은 이곳에서 요제프 멩겔레 같은 이들이 생체 실험을 자행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또한 수용자들의 머리카락을 잘라 카펫과 가발을 만들었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전체 28동으로 되어 있으며 1945년 1월 27일 소비에트 연방붉은 군대의 진주로

인하여 해방되었습니다. 

 

1947년 폴란드 정부는 아우슈비츠의 일부를 국립박물관으로 만들었으며, 1979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미국 보스톤에도 유태인 학살에 대한 추모기념관이 세워져 있어

제가 블로그에 올린 적도 있습니다.  수용소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찍을 수가 없었음을

미리 말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