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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251

에페소를 향해 오늘은 파묵깔레에서 아침을 먹고 에페소라는 유적지로 떠나는 날입니다. 에페소까지는 약 2시간 반쯤 걸린다는데 하도 버스를 많이 타서 이골이 나서 그 정도는 터키에서는 아주 가까운 거리로 인식이 되더군요. 버스를 타기 직전까지 근처 면제품 가게에서 일하는 히잡을 쓴 이슬람 여인들이 버스를 타려는 사람들을 붙잡고 식탁보와 방석 커버 등을 팔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일단 그 멋진 파묵깔레를 뒤로 하고 에페소를 가는 도중, 휴게소에도 들리고 가죽옷을 제작 판매하는 어느 상점에도 들렸습니다. 이곳에는 얼마나 한국 관광객이 많이 오는지 안내하는 사람부터 한국어를 하고, 간단한 패션쇼를 보여주면서 관광객 중 두 명을 뽑아 무대에도 세우는 등 흥미를 끌었습니다. 마지막에는 태극기까지 등장하며 치밀하게 한국 관광.. 2010. 8. 29.
파묵깔레에서의 하루 파묵깔레에서 그 멋진 풍경을 보고 나와 버스에 올라 숙소로 가는 길에 면제품이 여기 특산품이라 하여 어느 상점에 들렸습니다. 그곳은 한국 사람이 하는 곳인데 식탁보, 침구 등 각종 면으로 된 제품이 쌓여있고 가방이나 티셔츠, 자켓 등도 팔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저 눈으로 쓱 구경을 하고 다른 사람들이 흥정을 하는 동안 밖에 나와 주변에 있는 기념품점도 돌아다니고 한국어로 표기된 식당도 보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 때 마침 석양이 있어 마주 보이는 파묵깔레의 뒷편이 은빛으로 반짝여서 너무 예뻤습니다. 어디를 먼저 찍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석양으로 약간 붉은 빛을 띈 은빛이 녹색의 풀과 어우러져 환상적였습니다. 파묵깔레 안에서의 풍경도 대단했지만 밖에서 바라보는 경치도 너무 좋았습니다. 다시 버스에 올라 숙.. 2010. 8. 25.
파묵깔레에서 파묵깔레는 자연과 문화의 복합유산입니다. 파묵깔레가 자연유산이라면 바로 윗쪽의 히에라폴리스가 문화유산인 셈입니다. 파묵깔레는 석회층으로 인해 만들어진 환상적인 경관과 고대도시 히에라폴리스의 풍부한 볼거리가 절묘하게 조합된 곳입니다. 히에라볼리의 남쪽 경사부분을 파묵깔레라고 부르는데 유명한 온천지대입니다. 파묵깔레의 석회층은 자연이 만들어 낸 경이로운 산물로, 대지 상부에서 흘러내려온 석회 성분을 포함한 물이 오랜 시간에 걸쳐서 결정체를 만들고 이것들이 점차적으로 쌓여서 현재의 광활하고 희귀한 경관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멀리서 파묵깔레 석회층을 바라보면 마치 목면을 뭉쳐놓은 듯 보여 터키어로 '목면의 성'이란 뜻의 '파묵깔레'로 불립니다. 딱딱해진 광활한 석회층의 패인 곳에 상부쪽에서 흘러내려온 온천수가 .. 2010. 8. 20.
히에라폴리스에 도착하여 긴 버스여행 끝에 마침내 히에라폴리스와 파묵깔레에 도착하였습니다. 멀리서도 파묵깔레의 흰 석회암층이 빛을 받아 반짝거려 지루하던 일행들은 갑자기 정신이 확 들었습니다. 가이드에 의하면 이곳은 개들이 많으니 귀엽다고 함부로 만지지 말라고 주의를 주더군요. 버스에서 내리니 우선 주변의 장미며 야자수, 분홍과 흰색의 유도화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우리를 맞이하였습니다. 계절적으로 운좋게 마침 꽃피는 시기에 간 것 같았습니다. 그 길을 따라 들어가면 히에라폴리스의 유적들을 먼저 만나게 됩니다. 400년 경에 지은 도시 성벽, 1,380m에 달하는 열주거리와 1,200개에 달하는 석관이 여기저기 흩어져 페허의 쓸쓸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멀리 원형극장도 보여 가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많지 않아 아쉽지만 그저 바라.. 2010. 8. 15.
파묵깔레 가는 길 갑파도키아를 출발하여 파묵깔레를 향해 가는 내내 차창 밖으로는 하얀 양귀비꽃으로 들판이 온통 하얗게 출렁이는 아름다운 풍경이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간혹 빨간색 양귀비나 노란색 카놀라꽃이 함께 어우러진 풍경이 너무 예뻐서 달리는 버스 속에서 찍고 또 찍었는데 움직이는 바람에 정말 예쁜 풍경이 흔들려 안타까웠습니다. 카놀라꽃은 우리에게는 카놀라유라는 기름으로 친숙한 이름입니다. 빨간색 관상용 양귀비와는 달리 약용으로 쓰기 위해 양귀비를 재배할 때는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만 한답니다. 얼마를 달린 후,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어느 터키식당에 들렸습니다. 거기서 항아리 케밥이라는 터키식 전통음식을 먹었는데 쇠고기와 토마토, 가지를 비롯한 채소가 많이 들어간 터키 음식은 느끼하지 않고 우리 입맛에 맞는 것 같았습니다.. 2010. 8. 12.
갑파도키아에서 마지막 날 갑파도키아의 마지막 관광지인 파샤바 계곡을 떠나 다음 여행지인 파묵깔레까지는 약 9시간이 소요되는데 이미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여 근처에서 숙박을 한 후 다음 날 여정을 계속하기로 했습니다. 가는 호텔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이 대부분이라 비록 2층이지만 계단으로 무거운 가방을 들고 올라가는 게 쉽진 않았습니다. 호텔 종업원도 1-2 명 밖에 안되어 그들을 시키자니 제 차례가 오기까지 시간도 많이 걸렸고요. 일단 호텔에서 짐을 풀고 부페식으로 저녁을 먹는데 가이드가 서울을 떠날 때부터 김치는 가져오지 말랬는데 우리 일행 중 한 명이 배추김치와 총각 김치를 한 봉지씩 가져와서 그날 배추김치를 개봉했습니다. 더운 날씨에 익어서 비닐팩이 터질 정도로 배가 불러 먹지 않을 수 없었거든요. 그러나 그 냄새가 식당.. 2010. 8. 9.
파샤바 계곡(버섯바위 계곡)에서 갑파도키아 지역이 원래 기암 괴석으로 유명하지만 우치사르를 떠나 얼마 간 지난 후,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마치 무슨 만화 속 스머프 마을에 온 것처럼 모든 바위들이 버섯 모양을 하고 있어 그 특이한 풍경에 또다시 사진기를 계속 눌러댔습니다. 좀 전에 우치사르에서 보았던 그랜드 캐년과 같은 광활함 대신 유머가 느껴지는 웃음이 나올 것 같은 그런 모습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곳은 기독교의 박해를 피해 산으로 숨었던 기독교인들의 신앙의 마을입니다. 사람들이 그들의 신앙생활을 위해 바위에 굴을 파서 만든 곳으로 바위 속 거주 공간은 덥고 건조한 기후를 피할 수 있고, 적들에게 노출되지 않아 종교 탄압시기에 기독교인들의 훌륭한 피난처가 되었습니다. 그 중 한 석굴에 2-3층 정도 높이의 한 사람이 겨우 올라갈 수.. 2010. 8. 3.
우치사르(비둘기 계곡)에서 우리는 점심식사를 하러 데린구유 동굴에서 3km 떨어진 곳에 있는 바위산인 우치사르 성채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였습니다. 높은 곳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 전형적인 터키식 부페로 점심을 먹고 발코니로 나오니 기묘한 바위가 코앞에 있어 감탄사를 연발하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전체 모습 중 일부에 지나지 않아 감탄하기엔 일렀습니다. 바위산 정상에 거대한 바위를 자연 그대로 깎고 동굴을 만들어 천연의 요새를 이루고있어 '요새도시'라고도 불립니다. 과거 온통 응회암으로 뒤덮여있었던 이곳에 사람들은 외부로부터 방어를 목적으로 터널을 만들어 살았으나 부식작용으로 인해 오늘날과 같은 벌집모양의 바위산이 만들어졌습니다. 1,300m에 이르는 고지대에 위치한 우치사르는 황량하고 기괴한 주변풍경이 어딘가 특이해 보.. 2010. 7. 29.
데린구유를 보고 마침내 갑파도키아에 도착하여 첫 관광지로 데린구유라는 지하 석굴 거주지를 들렸습니다. 지하도시는 기원 전 400년 경의 기록에서도 도시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깊은 우물이라는 뜻을 가진 이곳은 개미집처럼 지하 120m까지 뻗어있는 지하도시인데 현재는 8층까지만 개방하고 있습니다. 1965년에 처음 공개되었으나 관람할 수 있는 면적은 10%에 불과합니다. 그 발상과 역사에 대해서는 의혹이 많으며, 한때는 아랍인에게서 도망쳐온 기독교도가 살았던 적도 있다고 합니다. 이 지하도시에는 일체의 성화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기독교 초기 때의 것으로 추정됩니다. 동굴 속 통로를 내려가면 끝없이 미로가 뻗어있고 빛도 들지않는 지하지만 관광객을 위해 곳곳에 등을 달아놓아 가이드를 .. 2010. 7. 26.
갑파도키아(괴레메)를 향하여 소금호수를 출발하여 2시간 이상을 더 가야 갑파도키아 지역에 도착합니다. 그 동안 버스 안에서 차창 밖으로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길가에 핀 빨간색 관상용 양귀비꽃, 노란색 카놀라꽃, 멀리 보이는 만년설 등을 보며 참 평화롭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아주머니가 화장실이 급하다 하여 일정에도 없는 장소에서 잠시 쉬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작은 레스토랑였는데 돈도 안 받고 화장실을 쓰게 해주어 얼마나 고마웠는지요. 소금호수에서 돈을 아끼느라 참으셨는지 아무튼 덕분에 주변 경치도 몇 장 찍었습니다. 갑파도키아는 한 개의 도시를 이르는 말이 아니라 여러 개의 도시 및 산으로 이루어진 지역을 일컫는 말로써, 아나톨리아 고원 한가운데에 자리한 실크로드가 통과하는 길목으로 대상 행렬이 근대까지 .. 2010. 7. 24.
소금호수를 보고 한국공원을 나와 케말 아타튀르크의 묘를 거쳐 기암과 괴석으로 이루어진 갑파도키아를 향해 앙카라를 출발했습니다. 앙카라에서 갑파도키아까지는 남쪽으로 약 4시간이 걸리는 코스이므로 또다시 장시간 버스를 타야합니다. 터키는 유적지나 관광지가 떨어져있어 유난히 버스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가는 내내 가이드의 설명도 듣고 차창을 통해 보이는 색다른 풍경에 그리 지루하진 않았습니다. 우리는 가는 도중에 120km 정도 지나면서 세계에서 사해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는 거대한 소금호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호수는 호수로 흘러들어오는 강물의 양이 매우 적기 때문에 여름에는 거의 말라 버립니다. 그래서 그렇게 큰 호수임에도 불구하고 물이 제일 많을 때인 겨울에도 가장 깊은 곳이 2m를 넘지 않습니다.. 2010. 7. 21.
앙카라에 도착하여 어제의 피로를 뒤로 하고 앙카라에서 아침을 맞았는데 오늘도 한국전쟁 참전 기념탑을 시작으로 만만치 않은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 남들은 출근하기도 전인 이른 시각에 앙카라 시내 중심부에서 약 1km 지점에 위치한 3,100평 규모의 한국공원에 도착하였습니다. 그곳은 한국전에서 전사한 765명의 무명용사들의 영혼을 안치한 석가탑 모양의 기념탑과 한국의 정취를 느끼게 하는 육각 정자(현 관리사무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높이 9m의 4층짜리 ‘한국전쟁 참전 토이기(터키)기념탑’은 서울과 앙카라가 자매결연을 계기로 1973년 11월, 1년여 간 시공을 거쳐 세워진 탑입니다. 공원은 관리가 잘되어 깨끗하고 쾌적했습니다. 그렇지만 탑 옆에 새겨진 터키 군인들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보니 대부분.. 2010. 7. 17.
이스탄불을 떠나며 우리는 톱카프 궁전 관람을 마치고 이스탄불을 빠져나오는데 교통 체증이 심해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그것도 퇴근시간보다는 이른 시간였는데도 차량이 너무 많아 가다 서다를 반복하였습니다. 버스가 서있는 동안, 차창을 통해 거리의 모습과 신호를 기다리며 서있는 시민들을 바라보니 환경은 다르지만 살아가는 모습은 어디나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길 가운데 심어진 장미가 빨간 빛을 뽐내며 줄지어 피어있어 도심의 한가운데라는 생각을 잠시 잊게 한 것이 다르다면 다를까. 앙카라를 향해 가는 도중에 우리는 첨탑이 2-4개 정도 있는 돔식의 작은 이슬람식 교회를 자주 보았습니다. 그것은 마을이 형성된 곳에는 어김없이 있더군요. 얼마나 이슬람 신자가 많은지 알 수 있는 풍경였습니다. 2시간 쯤 지난 후, 화장실도 가고 .. 2010. 7. 12.
톱카프 궁전에서 하기아 소피아 성당을 보고 큰 감동을 안고 나오니, 이스탄불에서 한 군데 더 보고 앙카라로 이동을 한다고 합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톱카프 궁전이 있고, 그 안의 보석관이 유명하다 하여 뜨거운 태양 아래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러나 출발할 때 생긴 문제로 반나절 일정 중 일부를 나누어 소화해야 해서 시간이 많지 않아 가이드의 독촉을 받으며 종종 걸음을 쳤습니다. 이스탄불에서 앙카라까지는 약 6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최소한 오후 2-3시에는 출발을 해야 밤 8-9시쯤 앙카라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행의 앞에는 현지 가이드가 서고 맨 뒤에는 서울서부터 인솔한 가이드가 지키고 있어 주변 구경도 하고 사진도 많이 찍고 싶었지만 단체 행동이라 눈치가 보였습니다. 그 와중에도 .. 2010. 7. 4.
하기아 소피아 성당을 보고 점심식사 후, 우리는 가까운 곳에 있는 이스탄불의 대표적 건축물인 하기아 소피아 성당을 관람하러 갔습니다. 이 성당은 제가 시카고에서 건축사 수업을 들을 때부터 중요한 건축물로 여러 번 강조되고 슬라이드로 시험도 보았던 건축물입니다. 그러나 가까이서 보니 그 규모가 굉장하고, 워낙 유명한 건물이라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입구부터 혼잡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입구에서 현지 가이드가 설명을 하는데 너무 사람들이 많아 잘 들리지도 않고 부딪힐 정도라 사진찍기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실내에 들어서는 순간, 내부가 비어있어 휑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더 아름답고 경건하게 느껴져서 좀 전의 혼란이나 몸싸움은 먼 세속의 일인 양 희미해지고, 새로운 영적인 세계가 펼쳐진 것 같았습니다. 이슬람어로 표기되어 그 .. 2010. 6. 26.